디에고 벨라스케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스페인. 1599~1660] 비야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열 살이 되던 해 본격적인 미술교육을 받았습니다. 열아홉이 되자 스승인 파체코의 딸 후안나와 결혼을 해 두 딸을 두지만 막내는 일찍 사망합니다. 활동 초기에는 종교적인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렸고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까지 꿰뚫어어 보는 능력으로 사실주의 화가로 높은 평판을 얻습니다. 24세에 궁정화가가 되면서 40여년 동안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왼)펠리페4세 (오)왕비 마리 테레즈

당시 17세기 스페인에서 화가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화가는 시인이나 음악가와 같은 예술가가 아닌 기술자 취급을 받았지만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 왕실을 통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개척해 나갔으며, 결국 1651년 2월 왕궁에서 시종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많은 물질적, 사회적 혜택을 받았지만, 동시에 많은 의무를 맡았습니다. 작품들 중 대부분은 왕의 가족 뿐만 아니라 왕실의 노리개감이었던 난쟁이, 시종들 그리고 걸인들 들의 초상화들도 그렸습니다. 당시로 흔치 않은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왕실 초상화나 자신의 주변 세계를 작품에 담았습니다.


<시녀들>1656년. 캔버스에 유채. 320x276cm.
마드리드.프라도 미술관.

미술사상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초상화. 17세기 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의 <시녀들>입니다. 원래 제목은 ‘펠리페 4세의 가족’으로 스페인 국왕의 가족 초상을 그린 것입니다. <시녀들>은 원래 왕실 사람들만 볼 수 있었지만 19세기 초. 프라도 미술관으로 옮겨지면서 대중들에게 공개 되었습니다. 공개 이후에 오랫동안 관심과 논란이 끊이질 않았는데요. 우선 구성이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이라는점과 등장인물의 역할이 분명치 않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해석 부분에서도 다양한 요소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어진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감상해봅시다. 오른쪽 첫 번째 창과 다섯번째 창을 통해 빛이 실내를 비춰 실내를 감싸며 뒤쪽 남자가 커튼을 걷고 있음으로 빛을 추가해주고 있습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마드리드 궁전에 있는 큰 방을 그린 것이며, 스페인 왕실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들을 마치 스냅샷 사진을 찍은 것처럼 정확히 포착하고 있습니다. 몇몇 인물들은 캔버스 밖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다른 몇몇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11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왕과 왕비, 다섯 살 난 마가리타 공주3명 뿐입니다. 심지어 왕과 왕비는 그림속의 벽 정확히는 그림속의 거울을 통해서 등장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초상화는 한자리에 모여 화가를 바라보는데 이 초상화 속 인물들은 일에 열중하며 화가 자신도 함께 등장하고 있음이 특이 합니다. 마르가리타는 왕과 왕비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시녀들>초상화 뿐만 아니라 많은 왕녀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림 속 11명의 등장인물을 하나 하나 살펴 보세요.


출처:http://blog.daum.net/gijuzzang

이 그림엔 두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을 왕과 왕비가 찾아와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두번째는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방에 공주의 일행이 찾아와 지루함을 덜어주고 있다는 얘기도 가능하답니다. 시녀들과 난쟁이, 샤프론, 경호원과 강아지까지 데리고와서 말이죠.
고스란히 화폭에 담음으로 초기 인상주의의 대표적 기법인 알라프리마기법 을 선보인것입니다.
*알라프리마- 이탈리아어로 ‘처음 at first’을 뜻하는 한겹의 칠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인상주의 대표적인 화법으로 연필로 그린 간단한 구도의 스케치 외에 밑그림을 채색하지 않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전까지 유화는 실내에서 천천히 여러 겹의 물감을 덧칠해 나가는 작업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대접받고 고야, 마네, 샤갈, 피카소 등 거장들에 의해 재해석을 거쳤습니다. 특히 피카소 16살 때 프라도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걸작을 처음 만나 깊이 매료돼 자신의 말년까지 이 <시녀들>을 모사해 58점의 패러디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 중 몇 가지 작품을 감상해보세요.


피카소<시녀들>모사품

참조: http://blog.daum.net/gijuzzang/, 위키백과, 구글,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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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요하네스 베르메르

[네덜란드. 1632~1675]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와 함께 네덜란드의 17세기를 대표하는 세명의 대가 중 한명 요하네스 베르메르.


(왼)렘브란트 (오)프란스 할스

따뜻한 빛의 화가.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끈 화가.
네덜란드 텔프트에서 직물업, 그림매매, 여관업을 했던 레이니어 얀슨존의 아들입니다. 베르메르는 21살에 1653년 델프트의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하여 자기 이름을 작품에 서명하고 판매하고 제자를 둘 수 있는 장인의 권리를 얻었습니다. 길드에 가입하려면 길드가 인정한 화가 밑에서 6년 이상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늦어도 15살 때 시작했을것으로 보나 누구에게 어디서 배웠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하네요. 화가로 독립한 해 그는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하고 1660년부터 장모 집에 들어가 화가 생활을 합니다. 20여년 동안 15명의 자녀를 두고 넷은 어려 죽지만 당시 가정의 평균 자녀 수가 2명인데 반해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한 일상적인 가정생활의 모습과 고향 델프트의 풍경을 그렸고, 다른 대가들에 비해 한정된 주제와 적은 작품수 그리고 작품 크기도 작습니다. 그래서 부업으로 그의 부친 여관을 경영하고 다른 화가의 그림을 감정하고 판매하는일도 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 못지않은 빛의 마술사로 안정된 구도, 섬세한 붓놀림, 빛의 이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빛의 효과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후 빛을 확폭에 담아냈습니다. 무척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끊임없이 덧칠과 수정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였습니다.
베르메르는 11명의 자식을 뒀는데 말년에는 아주 곤궁한 생활을 했습니다. 43세의 나이로 세상 떠날 땐 많은 부채까지.. 작품활동을 대부분 고향인 델프트에서 한 까닭은 돈 문제 뿐만아니라 명성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훗날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와 인상주의 화가들이 베르메르를 주목하게되어 재조명받게 됩니다. 200년이나 지난 19세기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는것이죠. 일생동안 40여점 안되는 작품을 남겼지만 이마저도 화가의 서명이나 제작연도가 생략되어 작품 진위를 가리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진위 논란 없는 그의 작품은 유화 32점뿐인데, 제작연도가 분명한 작품은 3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꼼꼼하고 디테일했던 베르메르.베르메르 작품을 보면 매우 명료하고 세부 묘사가 정밀했는데, 당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광학기구를 사용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합니다.

옵스큐라
출처:http-::honestart.tistory.com:6

*옵스큐라-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담은 카메라의 일종입니다. 빛과 상을 또렷하게 스케치하고 그려낼 수 있습니다.


(왼)진주귀걸이한 소녀 영화 (오)진주귀걸이 소녀 책
출처:(왼)kkkhwa.egloos.com (오)info.pipa.co.kr

스칼렛 요한슨이 진주귀걸이 여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다룬 소설로 그녀에 대해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이 작품 속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는 모델이 누구인지 알려진바가 없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6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x39cm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왕립 미술관

섬세한 매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이 작품은 해외 전시가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네덜란드에서 아끼는 작품 중 하나라고합니다. 전통적 초상화 형태는 아니지만 실제하는 사람처럼 관람자를 끌어 당기는 작품으로 검정 배경이 얼굴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며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있습니다.


출처:danbis.net

윤곽선 없이 부드러운 색조 변화로 모델링한 스푸마토기법으로 그려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노란색과 파란 터키식 터번을 쓰고 입을 살짝 벌린 모습,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는 이국적인 소녀의 모습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닌 마치 연극배우와 같은 표정을 취하고 있는 인물화로 보고 있으면 이 소녀에게 매료될듯 합니다. 베르메르의 생생한 물감을 사용해 미묘한 빛의 효과를 표현했는데, 이 작품엔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바로 귀고리를 단 2번의 붓 터치로 묘사했다고 하는데요. 여러번 세심하게 꼼꼼한 작업을 했던 베르메르가 단 2번의 터치로 묘사한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이 작품은 나치가 전쟁중에 숨겨뒀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왼)반 메헤렌 위작품 (오)반 메헤렌
출처:aboutchun.com

약탈된 그림이 아니라 반 메헤렌이라는 사람이 나치에게 약 50만 달러를 받고 베르메르 그림을 판매한 것중 하나로 그는 나치에게 국보급 미술품을 판매했다는 죄명을 받지만 사실 독일에 협력한 것이 아니라 나치정부를 골탕먹이려 위조해 팔았다고 고백한 후 단순히 서명 위조죄로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반 메헤렌이 사망 후 밝혀진 사실. 나치로 부터 그림값으로 받았던 돈이 위조지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술품의 사기극은 막을 내립니다.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작품 조사하면서 알아가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정말 재밌는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 작품 외에도 제가 알지 못한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으면 알려주시겠어요? ^^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작품을 감상할 때의 두근거림은 날로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작품이든 좋으니 감상평, 이야기 남겨주세요.^^
17세기 네덜란드 대표 대가 중 한분 빛의 마술사 렘브란트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렘브란트 작품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강의'를 클릭해주세요.^^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렘브란트'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참조: http://blog.naver.com/leeo1020/70187191034, 구글,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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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렘브란트

[네덜란드. 1606~1669] 평탄한 유년기시절. 법대를 중퇴하고 화가의 길로.. 1606년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레이덴의 제분업자의 열명의 자녀 중 9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중산계급의 지위로 그는 비교적 평탄한 유년기를 거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도시 레이덴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입학하지만 공부를 그만두고 화가 스바넨부르흐에서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3년을 그의 도제로 보낸 후 암스테르담으로가 당대 유명했던 화가 피터 라스트만에게 6개월간 그림을 사사받게 됩니다. 그는 그림수업 받은지 얼마안되 두각을 나타냈고 1626년엔 레이덴에서 독자적인 작업실을 운영했습니다. 1631년 렘브란트는 상업의 중심지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서 자유롭게 학문과 예술을 탐구하였고, 2년 후 렘브란트는 판사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하여 10년간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누리면서 그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또 그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루벤스등의 작품을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렘브란트의 예술적 독창성은 인물의 내면적 특징을 포착하여 그것을 극적인 구도와 명암의 대비로 표현해 내어 자신만의 느낌에 충실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스키아와 결혼 후에 귀족 초상화를 그리면서 많은 돈을 벌지만 그는 집을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왼)사스키아(렘브란트 부인) (오)헨드리케

<야경>이 당시엔 악평. 그리고 또 다른 사랑. 1642년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 완성을 했는데 악평을 받고, 같은해 아내마저 30살의 젊은 나이로 티투스가 1살일 때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세 아이들도 몇 달밖에 못살고, 막내 아들 티투스만 27년간 살았습니다. 그는 굴하지 않고 계속 작품에 열정을 가지며 생활하며 그의 아들 티투스 보모인 헨드리케와 사랑에 빠집니다.


티투스

하지만 그의 아내였던 사스키아의 유언으로 헨드리케와의 사랑을 이뤄 질 수 없습니다. 유언이 무엇이었냐구요? 그건 렘브란트가 재혼 할 경우 그녀의 재산 약46000프로린(약19억원)에 달하는 상속을 박탈하게 되는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녀의 아들 티투스의 미래를 생각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1656년 파산 선고로 유대인 지구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생활하였는데도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습니다. 1662년 극심한 가난속에 헨드리케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티투스 또한 사망하고 맙니다. 만년에는 끼니마저 굶으면서 비참하게 생활하면서도 인간을 향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기초로 독특한 그림을 제작하였지만,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를 제작한 이후엔 화가로서 생은 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합니다.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는 <야경>으로 더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야경

1632년-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42년- 야경.(=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
1656~58년- 자화상.
1661년- 추정 성가족.
1653년- 사스키아 반 오일렌브르흐의 초상. 헨드릭케 스톱펠스의 초상. 엠마오의 그리스도.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 캔버스에 유채. 169.5x216.5
헤이그.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

렘브란트를 스타로 만든 집단 초상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가 그린 최초의 집단 초상화. 이 그림으로 렘브란트가 초상화가로 입지를 굳혔다고해도 가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17세기 카톨릭을 수호하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네덜란드는 개신교 국가로 독립할 수 있었고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던 시기에 렘브란트가 활동했습니다. 그는 초기엔 역사화와 종교화를 그렸었는데 종교개혁 이후에는 교회나 궁정이 사라져 역사화와 종교화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 후 해양무역을 통해 성장한 부유한 신흥계급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돈이 많아지자 신분을 과시하고자 초상화가 인기였고 직업조합이나 단체에서도 초상화를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단 초상화가 네덜란드 그림의 독특한 전통이 되었다고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비공식적으로 시체를 해부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화가들이 해부학 실험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사진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이라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행정관이자 유명한 외과 의사 튈프교수가 1632년 1월. 강의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부학 극장에서 공개 강의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튈프박사가 시신을 해부하고 있는 공개 해부학 시간입니다. 튈프 교수는 초상화를 의뢰하면서 자신의 지명도와 학식을 잘 표현해주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암스테르담 외과의사조합의 주문으로 그려진 것으로 튈프 박사 외 7명의 조합원들이 있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이 그림 값을 공동으로 부담하고 돈을 많이 낸 사람은 그림 앞쪽에 배치되는게 관습이었다고 하네요. 그럼 시체는 누가..?
렘브란트는 빛을 이용해 짙은 배경과 대비되면서 두드러집니다. 짙은 붉은색을 띠는 팔의 근육은 밝은 시체와 대비되면서 부각됩니다. 명암대비를 이루며 입체적 표현되고 있는 것은 시신과 튈프 박사의 두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인물의 묘사보다는 해부학 강의라는 행위 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표현된 것이라고 합니다.
시체는 범죄자 아드리안. 부랑자였던 그는 처형된 후 의학대학 해부용으로 기증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죽음은 모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화면 오른쪽 앞에 펼쳐진 책은 해부학 책입니다. 당시 해부는 복부에서 시작되었으나 튈프박사가 팔을 먼저 해부하는 것을 보아 16세기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와 연관 되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베살리우스(1514~1564)는 해부학의 이론적인 기반을 세우는데 기여한 인물로 팔을 중시했으며 손의 해부를 강조 했습니다.
참조: http://a8401199.tistory.com/221, 구글,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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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들> 1533.
패널에 유채 207x209.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그림을 보기 전 당시 배경을 알면 작품이해가 더 쉽겠죠?
16세기 유럽의 정치, 종교적 위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유럽은 과학의 발전으로 과거 확신이 붕괴 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 신교에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왕비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교황에게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신청합니다. 사실 왕비 캐서린은 헨리8세의 형의 아내. 즉 형수 였습니다. 형이 일찍 죽어 계승하게 된 헨리. 앤 불린과 결혼은 하지만 역시나 아들은 못낳고 딸 이번엔 이혼이 아닌 반역죄로 사형을 시켜버립니다. 헨리의 여인의 스토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건 작품 끝맺음 후에 이어집니다.
스페인이 강대국 이던 당시 캐서린은 스페인 왕의 딸이여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이혼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영국은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 성공회’ 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듭니다. 이 성공회가 지금까지 영국의 국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국과 교황청 간의 갈등을 해결 하고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외교사절을 영국이 보냅니다. 영국 국교회의 카톨릭 교회로 부터 탈퇴와 관련 프랑스 왕이 위탁한 외교업무를 비밀리에 수행하려고 온 대사들 입니다.
왼쪽은 프랑스의 대사 쟝 드 탱트빌로 오른쪽은 프랑스 라보르의 주교이자 조르주 드 셀브입니다. 조르주 드 셀브는 훗날 프랑스 대사가 됩니다. 이 둘은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이는 그림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탱트빌은 오른손으로 당시 그의 나이였던 29라고 새겨진 칼집을 들고 있고, 옆의 셀브는 팔꿈치를 책 위에 걸쳐져 있는데 책에 그의 나이 25가 표시 되어있습니다. 매우 어린 나이에 사회적 지위에 올라와 있지만 16세기 당시 드문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나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징 즉 오브제가 많습니다.



위층의 선반에는 터키산 카펫 위엔 천구의, 휴대용 해시계 등 천문학과 시간측정 항해술과 관련 도구들이 있으며, 특히 천구의의 그림은 닭이 독수리를 공격하는 형상으로 프랑스(닭)가 유럽(독수리)에서 차지할 우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시계에 맞추어진 4월 11일 10시 30분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이혼날짜와 이혼서의 서명시간. 즉 영국과 로마의 결별, 유럽의 분열과 위기의 시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해시계를 확대해서 계속 봤는데… 어떻게 4월 11일 10시 30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_ㅠ 아시는 분은 좀 가르쳐주세요.



아래쪽에는 현이 끊어진 류트는 유럽의 조화에 이상이 생겼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지구본, 플루트 그리고 두 권의 책이 보입니다. 이 중 하나인 수학책은 1527년 독일에서 출간된 상인의 산술교본으로 펼쳐진 부분은 나눗셈은 실제 분열을 암시합니다. 펼쳐져 있는 다른 하나는 찬송가집으로 마틴 루터가 지은 노래로 ‘성령이여 오소서’와 십계명을 뜻하는 ‘인간이여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이라는 구교의 중요한 노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종교계의 화합을 원하는 당시 지성인들의 염원이기도 합니다.



맨 아랫부분의 자세히 보시면 해골입니다. 이 해골은 매우 치밀하게 계산하여 광학적으로 완벽하게 변형시킨 왜상입니다.
*왜상은 어떤 지점에 독자의 시선이 일치하는 곳에서 그림속의 어떤 형태가 정상적으로 보이는것을 말합니다. 화가는 자신의 원하는 의도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그림은 초기에 벽에 걸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해골 그림은 관객이 오른편 계단에서 내려오다 어느 지점에서 그림을 볼때 그림처럼 해골이 바뀐다고 합니다. 당시 여러 화가들이 다양하게 시도 하던 것이 정확히 작도 하여 왜곡시키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물로 해골을 그리는 것은 당시 그림에 즐겨 사용되었는데 바니타스양식.
*바니타스는 ‘인생은 덧없다’ 뜻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정물화 양식으로 불가피한 죽음과, 쾌락의 무의미함 등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그림안에 등장시키는 양식입니다. 해골은 모래시계, 나비와 같이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하는 소재였습니다. 모든 것은 유한하고 덧없스으며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삶의 진실한 가치에 접근하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서양의 회화에서 자주 나타나며 당시 프랑스에서도 많이 사용되어 장 드 당트빌이 쓰고 있는 모자에도 해골 모양이 수 놓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 꼭대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고난상 ‘예수의 구원’ 이 이들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집에는 대개 이 십자가상 부분이 잘려 나간채 인쇄 되어있는데요. 편집가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편집과정에서 잘랐다고 합니다.



아까 이야기 하다만 헨리8세의 여인들은 어떻게 됬을까요?
앤에게 반역죄를 씌워 사형을 시킨 후 세번째 아내는 헨리가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 게다가 아들도 낳지만 출산 중 사망하고 맙니다. 그 후 클레브스 공작의 누이인 앤과 결혼하지만 독일지역 출신으로 무뚝뚝했던 그녀는 가장 짧은 결혼생활로 이혼하게 됩니다. 다음 아내는 캐서린 하워드. 스무살의 어여쁜 아내였지만 바람피다 걸려 사형을 당합니다. 그의 마지막 부인 캐서린 파. 늙고 말련엔 과대망상증까지 보이는 헨리와 결혼생활을 하지만 얼마 안되 헨리 8세가 사망하고 맙니다. 정말 헨리8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을 조사하면서 역사적 배경도 알게 되고 정말 흥미 진진했던 포스팅이었습니다. 한 그림에 수많은 의미가 담아 그리는 한스 홀바인, 그림을 자세히 보면 수염 하나 하나, 옷자락 까지도 정말 정밀합니다. 그리고 지금 까지 본 작품 중 가장 많은 오브제가 담긴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조: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명화속 비밀이야기, 런던에서 꼭 봐야할 100점의 명화, 구글,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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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백과
<수태고지> 1430~1432 목판에 템페라.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프라 안젤리코. 이탈리아. 1395~1455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독실한 그리스도 교인으로 사람들은 그를 베아토 안젤리코(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천사)라고 불리기 까지합니다. 예수 탄생을 예고하는 수태고지. 수많은 수태고지 중에서 전 프라 안젤리코의 숨겨진 의미가 많아 더 인상깊은 작품으로 꼽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딱 봐도 마리아구나! 하는 마리아앞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왼쪽 맨위 마리아를 향해 쏟아지는 빛 속엔 하느님의 두손이 보이며 그 사이 비둘기 한마리도 보입니다. 비둘기는 성령, 영원한 시간을 의미하며, 이 빛으로 바로 임신하게 됩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 사이 기둥 위 건물 아치에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저는 한참 보다가 발견했답니다. 천장의 모양을 앞에서 보면 알파벳 ‘M’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 ‘M’은 마리아의 이니셜을 뜻하기도 합니다. 문 안쪽엔 소박한 가구 몇 개만 보이는걸로 보아 마리아가 정숙하고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검소함의 미덕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집 옆으로는 아름다운 정원. 인류 최초의 지상 낙원 이었던 에덴 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발 밑에 사과를 보면 암시 할 수 있듯 천국에서 사과를 먹다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가 보입니다. 아담과 이브하면 나체가 아니냐구요? 선악과를 먹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되면서 옷까지 만들어 입은 것이라네요. 그들을 몰아내는 천사 또한 가브리엘 입니다. 가브리엘 옷이 똑같은거 보이시죠?

아담과 이브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 그들은 마리아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바로 아담과 이브. 즉 인간들의 조상이 죄를 지어 낙원에서 쫓겨났지만 예수가 이들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그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왼편의 아담과 이브는 원죄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나지만 오른편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함으로써 인류가 다시 희망을 지니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 인류에게 원죄를 잉대시킨 사실을 묘사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자가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러한 주제를 가졌다고 합니다. 신성한 주제만을 그린 화가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출처:구글

그가 죽은지 500여 년도 지나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로부터 시복(죽은 뒤에 복자 품위에 오르는 일)을 받게 됩니다. 그만큼 그의 신앙심이 작품에 많이 들어났다는 거겠죠? 그림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 할 수록 그림의 매력에 빠져 드는것 같습니다. 기독교에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듯, 이번엔 천사에 대해 찾아 보았는데요. 천사는 그리스어로 앙겔로스에서 유래한 말로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전령을 뜻 한다고 합니다. 그림 아래 제단 장식대에는 성모마리아의 일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제단 장식대
출처:구글

참조: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명화속 비밀이야기, 구글,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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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백과
<비너스의 탄생> 1486. 캔퍼스에 템페라. 172.5x278.5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신화를 철학적 알레고리로 변형. *알레고리: 그리스어 ’다른’과 ‘말하기’라는 단어가 합성. 즉 다른것으로 말하기라는 용어가 함축 하고 있습니다. 즉 신화를 철학적으로 말한것이죠.
중세의 장막을 걷어내고 완벽한 미의 상징으로 인간의 원초적 모습 그려내어 금욕적이고 침묵적인 중세를 막 벗어난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인간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 중 하나 입니다.
많은 분들이 비너스 탄생 배경을 아시겠지만, 먼저 이 작품을 감상 하기전 배경지식을 알고 가볼까요? 중간에 있는 이 비너스가 왜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졌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아들인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는 그의 동생들을 감금하는 악행을 응징하려고 자신의 어머니 가이아와 계획해 우라노스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의 성기를 거세해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거세된 성기가 바다에 떠다니다 거품이 생겨 그곳에서 미의여신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조개를 힘껏 불어 남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 매달려 있는 여자는 그의 아내인 꽃의 여신 플로라입니다. 꽃의 여신이 매달려 꽃을 뿌리는것이 보이시나요? 알몸의 비너스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 여인은 계절의 신 호라이. 그녀는 비너스에게 옷을 입히고 아름답게 단장시켜 신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손으로 수줍게 몸을 가리고 있는데 이 자세보고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라고 합니다.


출처:(왼)blog.naver.com/wind7157 (오른쪽)구글


출처:mypi.ruliweb.daum.net

비너스의 서 있는 자세는 전형적인 ‘콘트라포스토’자세로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쪽 다리는 무릎만 약간 구부리는 자연스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세는 초기 조각상의 뻣뻣함을 탈피하고자 다리 한쪽을 내미는데, 점점 발전하여 몸을 더 꼬아 생동감을 더 주었다고 합니다.
고전 미술에서 최고의 누드화로 알려진 이 작품이 탄생에는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 할까 합니다.


<프리마베라>
출처: 위키백과

프리마베라 작품을 보신분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도 비너스여신이 주인공인데요. 그곳 비너스와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가 같은 모델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제 모델로 피렌체 최고의 미인 시모네타 베스푸치로 1475년 열린 마상창시합에서 ‘아름다운 여왕’으로 뽑히기도한 여인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은 그녀 당연히 보티첼리도 그녀에게 사랑을 빠지지만, 그녀는 바로 메디치가문의 줄리아노의 정부가 됩니다.
이 그림은 그의 형 로렌초가 그들의 결혼 기념으로 보티첼리에게 주문한 그림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비너스의 눈은 어딘가 슬퍼보입니다. 아마 보티첼리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시모네타는 보티첼리의 후원자인 메디치가와 혼인 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그녀는 22살의 이른나이 결핵으로 죽고 맙니다.

<비너스의 탄생><프리마베라>뿐만 아니라 <석류의 마돈나><마르스와 비너스>등의 많은 작품에 그녀를 환생 시킵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시모네타를 그리워 했고, 그녀가 죽은 뒤 34년 후 시모네타 발 끝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왼)석류의 마돈나 (오)마르스와 비너스
출처:(왼)www.k-heritage.tv (오른쪽)www.gulnara.net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의 영감은 어디서 받았을까요? 수많은 의견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그리스의 시에서 영감 받았다고 합니다. 1448년 피렌체에서 그리스 시인 데메트리오스 칼콘디레스. 오래된 시인의 호머풍 시를 감상해보시죠.

“당당하게 황금관을 쓴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여
넓게 퍼지는 바다 물결위의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제피로스의 촉촉한 입김에 밀려
키프로스의 바닷가의 영지에 도착한 그대를 위해 노래하리라."



참조: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명화속 비밀이야기, 구글,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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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뱃놀이의 점심 식사> 1881

센강의 사토섬에 정박한 레스토랑 푸르네즈선의 테라스에서 점심 후의 느긋한 분위기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작입니다.

1. 알리느 샤리고. 훗날 르누아르 부인이 되는 여인입니다.
2. 알퐁세 푸르네즈. 식당주인 아들 입니다. 식당 이름도 주인이름과 동일 하다고 합니다.
3. 알퐁신 푸르네즈. 식당주인 딸이자 알퐁세의 동생입니다.
4. 바롱 라울 바르비에. 미식가로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초대한 사람입니다.
5. 줄 라포르그. 시인이자 비평가.
6. 샤를 에푸르시. 은행가.
7. 앙젤르. 당시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
8. 유진 피에르 레스트리기.
9. 폴로테. 기자.
10. 젠 사마리(1857~1890). 배우.
11. 알려지지 않은 인물.
12. 매졸로 트리뷸레. 신문기자.
13. 엘렌 앙드레 . 드가의 작품인 <압생트>의 모델로 추정되는 배우
14. 구스타브 카유보트.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 절친이자 후원자.


출처:[르누아르]<시골의 춤>1883. 오르세미술관.
여자 모델: 알리느 샤리고(르누아르 부인되는 여성)


출처:[드가]<압생트>1876.
여인-엘렌 앙드레(배우) 남성-조각가 마르슬렝 데부탱 장소는 몽마르뜨 언덕의 카페'누벨 아덴'



[르누아르]. 뱃놀이의 점심 식사


이 작품은 식탁위의 음식 등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르누아르는 정확한 좌우 대칭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림의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동시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연결되는 사선을 눈으로 그어 보시면 이 사선속에 인물과 정물을 교묘하게 배치시킨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편 왼쪽에 서 있는 식당 주인의 뒷쪽 원경에는 뱃놀이 하는 모습이 강한 붓터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운데 있는 식당 주인의 딸과 뒤쪽 남자의 얼굴에 나타난 차양에 의한 그림자를 보면 빛에 의해 나타나는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고자 했던 르누아르의 의도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식탁위에 놓인 병과 잔의 모습입니다. 잔에서는 포도주의 앙금이 살짝 비쳐 나오고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로 된 이 잔들이 빛과 만나면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세밀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붓터치로 묘사되고 있는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물랭 드 라 갈레트'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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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에서

미술상인 폴 뒤랑 뤼엘 이 1881년 7월 7일에 사들였습니다.
배경은 센 강 옆 샤토 마을에서 영업 중이던 레스토랑 포네이즈의 테라스입니다.
이 곳은 르누아르가 전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알퐁신 푸르네즈의 초상>을 그린 곳이기도 합니다.
봄의 아름다움과 젊음의 생기발랄함을 축하하고 있는 <테라스에서>는 기법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르누아르의 대역작입니다.
이 거장은 이 그림을 통해 활기가 넘치는 색상과 변화무쌍한 붓터치를 구사하여 실물사이즈와 유사한 인물로 테라스 앞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자매?! 모녀?! 모델?!
실제로 두 자매는 모델로 자매가 아니라고 합니다.
두 소녀의 얼굴은 르누아르가 새로 마스터한 강조기법으로 도자기 표면처럼 반짝이는 얼굴의 윤기는 명암으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르누아르 조사하면서 또 다른 책에선 이 두 소녀가 모녀 사이라는 내용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수줍어하는 호기심어린 아이의 표정과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아이다운 모습을 포착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보시기에 모녀 사이 같으신가요? 아님 자매인척 하는 모델일까요?
이 작품에 대해 아시는 분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이 무렵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의 응접실을 통해 상류층에 소개 되었고, 상류층 사람들에게 초상화 등을 그려주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습니다.
그는 알제리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샤투에 들렀고, 여기서 알린 샤리고를 만났습니다.



알퐁신 푸르네즈의 초상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알퐁신 푸르네즈는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에서 왼쪽 턱을괴고 모자를쓴 여성으로 이 식당 주인집 딸입니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와 알퐁신 푸르네즈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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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기 영감의 초상화 ] 1887

일본판화를 그대로 사용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당시 일본판화에 빠진 고흐와 테오는 일본판화를 수집하기도 합니다. 고흐 작품을 보면 어느 한 순간 부터 색채가 다양하며 화려해 집니다. 감자먹는 사람들과 비교 하면 확실히 그렇죠?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감자먹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Why? 일본의 다양한 색채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랍니다.
이 후 다양한 색채로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해바라기



(왼)[해바라기]1888 (오)[꽃병에 꽂힌 14송이 해바라기]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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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9 21:28 문화&다큐&교양/미술작품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몽마르트 언덕.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루느아르
출처:위키피디아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는 마네, 모네 등 인상주의 시대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물랭 드라 갈레트는 당시 몽마르트의 야외 무도회장이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출처:경기도립중앙도서관

1876년에 그린 이 작품은 오랜 연구와 습작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르누아르가 30대 중반에 그린 작품으로, 커다란 두 개의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오늘날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밝은 색채에 인상주의 기법으로 햇빛을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의 지도하에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전쟁) 이 끝난 후 강화조약에 불만을 품은 국민방위군 일부와 파리 시민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파리코뮌(1871년. 보불전쟁 후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 정부)이라는 사건과 관련있다고도 합니다.
파리코뮌 당시에 지도부가 있던 곳이 바로 이 무도회장이었다고 합니다.
파리코뮌 기간동안 첩자로 오인당해 국민방위군에게 총살당할뻔했던 르누아르에게 전쟁과 폐허의 기억은 잊어버려야할 존재였고 유토피아주의에 들떠 있던 과거를 회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무기력했지만 화려했던 파리지앵의 꿈이 이 그림을 선명하게 수 놓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알려져 있고 인상주의 회화의 대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왼)옛날. 물랭 드 라 갈레트 (오)현재. 물랭 드 라 갈레트
출처:KBS 명작스캔들


모희는 르누아르가 그리기 좋아했던 소재 중의 하나로 다양한 구도로 실험 했습니다.
그는 여름 내내 이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 설득을 했습니다.
명작 스캔들 26번째 르누아르편에서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섭외 하기 위해 당시 인기 많은 모자를 경품으로 주는 마케팅 전략을 섰다고 합니다.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부인은 마르그리트 르그랑으로, 마르고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였고, 남자는 돈 페르도 베델 데 솔라레스 이 카르데네스로 스페인계 쿠바인이였습니다.
앞에 두 여인은 르누아르 친구였던 에스텔과 동생 장. 마지막으로 오른쪽 남자 세명.
프랭키 래미, 노베르 고네트, 조르쥬 리비에르라는 화가의 초상입니다.
르누아르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종종 방문했습니다.
그중에는 비평가였던 조르주리비에르도 있었습니다.
그는 르누아르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었고 그의 작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파리의 삶을 담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왼)갈레트 (오)몽마르뜨 언덕
출처:네이버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었고, ‘르 블뤼트 팽’이라 불렀던 물레방아와 인접했습니다.
갈레트는 건조하고 얇은 과자로 종종 단 포도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물레방아에 근처 무도회장에서 갈레트가 판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추측해 보았습니다.
이 장소는 젊은이와 화가에게 인기가 좋았고 춤을 추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잡담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물랭 드 라 갈레트 앞에 있는 나무 그늘. 포도 덩굴이 장미나무 아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르누아르는 방해받지 않고 야외에서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물랭 드 라 갈레트 근처에 있는 코르토거리 12번지의 집을 화실로 빌렸습니다.
그는 이 아틀리에에서 1년반 가까이 매일 이곳을 드나들면서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넓이 175cm, 높이 131cm나 되는 대형 캔버스를 아틀리에에서 몽마르트르의 무도회장가지 매일 가지고 가서 현장의 전경을 직접 묘사했다고 합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가셰박사의 초상'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그림은 경매에서 일본 사이토 료헤이에게 7천 8백달러로 팔리게 됩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화에서 말씀드렸듯 이 그림은 암시장에 나오게 됩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작품은 료헤이 관에 함께 가져가기엔 너무 큰 작품이 었나요?
이 작품을 소개하며 다시 한번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화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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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가셰 박사, 갈레트, 료헤이, 르누아르, 마네, 모네, 몽마르트 언덕, 무도회,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물레방아, 보불전쟁, 오귀스트 르누아르, 인상주의, 파리코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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