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비 샤넬

도서관에서 빌려보니... 커버가 없어 찾아 올립니다^^
샤넬 일생이 Style, Self-Invention, Fearlessness, Surviving Passion, Chance, Success, Victory, Money, Feminity, Time, Living Life로 나뉘어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져있다. 하나 하나 요점이 적혀 있어 읽기도 편하고 짧아 금방 읽힌다. 샤넬의 어린시절, 샤넬의 남자, 샤넬의 추구한 삶, 인생관 등 내가 평소 샤넬에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듣는 것 같다. 책 표지 처럼 우아한 여자를 만드는 11가지 자기창조법. 일생 포함된 계발서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샤넬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다가 가고 싶은 분에겐 한번더 강력 추천한다. 그 중에서 나는 샤넬의 격언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정리 해보았다. 격언만 봐도 샤넬의 추구한 인생관을 엿 볼 수 있을 듯 하다.

*여자라면 바드시 이 두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세련되어야 하고 누구나 감탄할 만큼 멋져야 한다.

*집을 떠나기 전에 거울을 보고 액세서리 하나를 빼놓아라.

*눈에 띄게 값이 비싼 것, 그리고 복잡한 것보다 여자를 나이들어 보이게 하는 것은 없다.

*항상 약간은 모자란 듯이 입는 편이 더 나은 법이다.

#*나는 패션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바로 패션이다.


*진정으로 럭셔리한 스타일이라면 편해야 한다. 편하지 않다면 럭셔리한 것이 아니다.

*우아한 기품은 새 옷을 입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가장 용감한 행동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명백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모직이나 좀 더 상식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감각적인 행동인것처럼 여겨질 때, 그때는 저지를 사용하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 한다.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 그 밖에 또 다른 어떤 시간 이 필요하단 말인가.

*옷을 입는데 자기가 가진 시간을 모조리 쏟아 부을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두세벌의 슈트뿐이다. 슈트 그리고 슈트와 어울리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말이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산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가 사랑을 원한다는 것을 아신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옷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옷을 선택할 것이다.

#*위대한 사랑은 오래 견뎌야 한다.

#*여자는 재정적인 안정과 명망을 얻기 위해서 결혼한다. 나는 그 모두에 관심이 없다.

*일은 언제나 나에게 일종의 약이었다.


*벽이 문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벽을 두드리는데 시간을 보내지 말라.

*패션은 단지 드레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에도 있고 거리에도 있다. 패션은 아이디어와 우리가 사는 방식과 일어나느 일과 관련된다.

*세상은 죽어가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있었다. 기회가 왔고 나는 그것을 잡았다.

*나는 내 삶을 창조했다. 이전의 삶이 싫었기 때문에.

*당신이 알을 낳는 암탉이 아닌 이상 온화함으로는 성공을 이룰 수 없다.

*맞아요. 누군가 내개 꽃을 한 송이 주면 나는 그 꽃을 어떤 손으로 꺾었는지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진달래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은 잘라버리는 것이다.

*자칭 샤넬 패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옷들을 보면 나는 이렇게 말해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내 작품들 중에는 감자 자루 같은 옷은 단 한 벌도 없는데요, 라고 말이죠.

*소유는 가능한 적게 해야한다. 당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하게 하지 말라.

*사람은 자신의 재력 범위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가적인 일들이 당신을 항상 괴롭힐 것이다. 큰집을 갖지말라. 그런식으로 휘둘지마라.


출처:엔하위키미러

*돈은 좋은 하인이며 나쁜 주인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유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르다.

*향수를 쓰지 않는 여성에겐 미래가 없다.

*일단 나는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남자에게 속하게 되면 지루해서 죽고 만다.

*남자가 어린아이 같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절대 자신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추측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조보석은 사치가 너무 손쉬운 시대에 허세를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옷을 잘 못입는 여성을 보면 사람들은 그녀의 옷에 주목하지만, 옷을 잘 입는 여성을 보면 사람들은 그녀라는 사람을 주목할 것이다.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사랑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외 남는 시간이란 없다.

*스케치나 드로잉은 몸이 아니다. 나는 종잇조각을 파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돈을 청구하는 것은 관람석이 아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라.

*대답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내게는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스스로를 방어할 그 많은 방법 중에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않은 여성이라면 그녀는 떠나야 한다.

수많은 chapter 중에 가장 와 닿은 부분은 'CHANEL N.9 Feminity 진정한 여자가 되려면' 에서’본론으로 직행하라’이다.
"샤넬은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곧장 들어갔다. 나는 샤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당신 인생이나 일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허비 하지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 중요한 것, 즐거운 것을 먼저하라." 라는 작가의 말이 가장 인상 깊고 다시 한번 새기게 되며 내 인생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표시는 책안에 있는 격언 중 내가 더 많이 와 닿은 부분을 체크한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떤 격언이 마음에 와 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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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erryStone



출처:blog.naver.com/embrasse7880

EIDF 2014년 작품 중 "칼 라거펠트: 인생을 그리다.”를 보았습니다. 약 5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로 PD가 질문하면 칼 라거펠트가 직접 그림을 그려주면서 설명해주는 형식입니다.
그의 어린시절 집부터 그의 작품, 뮤즈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전 이 다큐를 보며 역시 디자이너 그림 실력은 다르구나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선 하나 하나 구도 하나 하나 신경 쓰는 화가와 달리 거침 없이 펜으로 그리는데 정말 감탄의 연속 이었습니다. 칼 라거펠트 그림 중 독특한 점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셰도로 보이는 화장품을 사용하는 장면 인데요. 그는 샤넬과 슈에무라 화장품을 사용 한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 중 칼 라거펠트 금기어록에 나오는 몇가지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술과 담배 마약은 하지 않지만 그걸 즐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이 그러지 못하는 일이라 존경스럽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 ‘너는 나를 닮았어. 나보단 좀 못하지만’ 금기 어록을 먼저 읽고 다큐를 보니 칼 라거펠트에 대해 좀 더 친근감일 느껴졌습니다. 중복학습이라는게 그런거겠죠?


(왼) 린다 에반젤리스타 (오)클라우디아 쉬퍼 출처:(왼)prologue.blog.naver.com (오)sporer.tistory

그의 뮤즈였던 린다 에반젤리스타, 클라우디아 쉬퍼.


(왼)사스키아 드 브로우 (중)안야루빅 (오)프레야 바헤 출처:(왼)lovexpeace.egloos. (중)blog.daum.net:ladymarmalade93 (오)sporer.tistory

현재의 뮤즈 사스키아 드 브로우, 안야루빅, 프레야 바헤. 남자 뮤즈는 브래드 크로닉. 그의 대부이기도한 칼 라거펠트. 브래드 크로닉 아들인 허드슨 코에닝. 패션쇼에 나올만큼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대부도 아무에게나 해주는게 아닌가봅니다. 이렇듯 칼 라거펠트가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순간을 알 수 있어 전체적인 칼 라거펠트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브래드 크로닉과 그의 아들 허드슨 코에닝 출처:엘르. sn@pp

칼 라거펠트의 거침 없는 드로잉과 말솜씨로 50분간의 다큐는 정말 짧게 느껴 졌습니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이 다큐를 보시길 바랍니다. ^^


출처:eidfblog티스토리

샤넬이 있어서 칼 라거펠트가 있는걸까요? 아님 칼 라거펠트가 있었기에 샤넬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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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하면_______이다.
샤넬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게 뭔가요? No.5? 트위드 슈트? 퀼팅 백? 진주목걸이? 샤넬이 명품이 되기 까지의 변천사를 알아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은 어린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떨여저 고아원에서 동생과 생활합니다. 하나뿐인 가족 동생마저 병으로 사망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18살에 보조 재봉사와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샤넬이 부르던 노래중 ‘코코리코’가 있는데 그 덕에 사람들은 ‘코코’라는 별명이 생기게 됩니다.


(왼)샤넬 (오른쪽)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모자와 샤넬 모자
출처:(왼)blog.sktworld (오른쪽)it.co.kr

샤넬 인생은 많은 남성들의 도움과 사랑이 많이 차지 한다고 해도 가언이 아닙니다. 그 중 첫번째. 가브리엘의 인생 전화점을 주게 되는 한 신사. 에티엔 발장. 발장의 구애로 25살에 그의 정부가 되어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당시 유행하던 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승마복을 리폼에서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류층 스타일이 패션 브렌드던 시절. 많은 창부와 정부들은 상류층을 따라 하며 그들과 같아 보이게 했었는데요. 샤넬의 의상은 당연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죠? 샤넬은 발장과 어울리며 상류 문화에 대해 습득해 나가면서, 자신의 패션 감각을 살려 디자인도 했습니다. 그 중 제일 먼저 선 보인 것이 모자. 귀부인들에게 모자가 인기를 끌면서 1908년 샤넬은 자신만의 모자가게를 엽니다. 모자 가게 오픈한 샤넬을 위해 발장은 그녀에게 사업가로 성공한 지인 카펠을 소개해줍니다.


샤넬과 카펠
출처:(왼)artinsight(오른쪽)shezcom

친구를 함부러 여인에게 소개해주면 안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건 아닐까요? 샤넬과 카펠은 비슷한 인생관으로 서로에게 끌리게 되며, 결국 샤넬은 발장을 떠납니다.

1901년 두번째 남자 카펠의 후원으로 파리 캉봉 거리 21번지에 파리의 모자 디자이너 ‘샤넬 모드’를 열면서 인기를 얻습니다. 화려한 모자가 많았던 곳은 샤넬의 심플한 디자인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모자로 유명세가 된 샤넬은 의류 패션에도 손을 댑니다. 당시 코르셋과 불편하지만 화려한 옷이 유행이던 스타일이 샤넬에 의해 바뀌게 됩니다.


(왼,중앙)코르셋 (오른쪽)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옷(화이트드레스)에서 샤넬이 디자인한 옷(흑백)
출처:(왼)채널 뉴스 (중앙)위키피디아 (오른쪽)it.co.kr

불편한 코르셋은 없어지고,긴 스커트도 무릎 길이까지. 샤넬은 시대 흐름도 파악하고 있던 걸까요? 여권 신장 운동으로 1910년 부터 1920년대의 트렌드를 샤넬이 장악합니다.
그녀를 후원하던 카펠은? 세계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진출을 위해 영국 귀족과 결혼하고 맙니다. 인생관과 서로의 사랑도 결국 명예를 이길 수 없는 것일까요? 하지만 카펠은 결혼 후에도 샤넬을 만났고, 결국엔 이혼 하고 다시 샤넬과 함께합니다만… 누군가를 불행하게 한자는 결국 끝까지 행복하지는 못한건가요? 1919년 카펠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그 후 그녀는 일에 몰두 하며 1921년 쿠튀리에 인정을 받으며 샤넬 오트 쿠퀴르 하우스를 뤼 캉봉 21번지에 설립합니다.


(왼)마릴린 먼로 (오)샤넬 No.5
출처:(왼)neurotics.egloos(오른쪽)myjlook

고객이 많아지면서 VIP도 생기게 됩니다. VIP고객을 위해 만든 향수가. 그 유명한 NO.5 마린린 먼로의 잠옷 NO.5하면 가장 유명한 설이 있죠? 잠잘 때 무엇을 입냐는 질문에 마릴린 먼로는 “전 샤넬 넘버5라고 대답했죠. 누드라고 말하긴 좀 그렇잖아요?” 수 많은 숫자중에 왜 NO.5? 제조자가 10번까지 샘플을 만들었는데 그중 5번을 선택을 해서 No.5가 탄생. 그것 말고도 컬렉션이 5일에 열려 행운의 숫자로 여겨 NO.5라는 설도 있습니다. 정말 단순한 작명 실력이죠? ^^; 이 향수는 고객 선물용으로 제조 되었지만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아져 1921년에 샤넬 NO.5가 출시 됩니다.


리틀 블랙 드레스
출처:Vingle image


(왼)당시 샤넬 진주목걸이 (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샤넬 목걸이
출처:(왼)pdtaeng.tistory (오)google image

장례식에만 입던 검정옷을 세련되게 샤넬만의 스타일로 만든 것이 1926년. ‘리틀 블랙 드레스’ LBD(Little Black Dress)라고도합니다. 처음에 꺼리던 블랙 드레스는 곧 유행 합니다. 블렉드레스를 처음 선 보였을때 ‘보그’에선 “become a sort of uniform for all women of taste” 다양한 취향을 가진 모든 여성을 위한 일종의 유니폼이 될것이다.

그 후에 샤넬의 전설적인 아이템. 샤넬 슈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샤넬손에 거친 진주 모양 악세사리는 더이상 보석이 아닌 장식품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샤넬 상징 중 하나이던 진주목걸이는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전 이번 포스팅 자료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나중에 소개할 백도 원래는 서민층으로 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샤넬은 에르메스, 루이비통처럼 처음부터 상류층을 타겟으로 만든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관련 정보는 아래로고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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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진주 악세사리처럼 우리가 샤넬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샤넬 상징 꽃 입니다. 얼핏 보기엔 장미 같고, 많은 분들이 장미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그 꽃은 동백꽃. 카멜리아 입니다. 자랑, 겸손한 마음의 꽃말을 가진 이 꽃은 샤넬이 가장 좋아한 꽃이라고 합니다.


(왼)동백꽃 (오)샤넬 화장품
출처:(왼)eagonblog (오)dreamcity.tistory

그녀의 친구는 영국수상. 세계1차대전과 달리 2차 세계대전에서는 샤넬은 1939년 잠시 사업을 접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2차 세계대전에도 찾아옵니다. (물론 2차 세계대전 일어나기전에도 수많은 남자가 있었답니다.) 독일군 나치 장교. 한스 귄터 폰딩클라게. 그와 함께하여 샤넬은 전쟁중에도 위험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전쟁 후엔 나치 애인이라는 명목으로 잡힙니다. 그녀의 인맥은 어디까지 인가요.. 위스턴 처칠이 친구였던 샤넬. 그가 도왔다는 소문도 있다는데… 얼마후 무죄로 석방됩니다. 무죄로 판명나자 샤넬은 더이상 프랑스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구요? 프랑스인들은 샤넬을 매국노라 생각했기 때문에 샤넬의 명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샤넬 트위드 수트
출처:korea.nomesdesign

샤넬이 없어진 후의 프랑스엔 외국인 디지아너 발렌시아가와 크리스찬 디올과 같은 신 디자이너들이 속출 했습니다. 15년간의 망명생활 후 1954년 71세로 파리에 돌아옵니다. 반겨주는이는 없었지만, 그녀는 컴백을 준비 합니다. 설상가상인가요? 쇼 이후에 사람들은 20년 전과 비슷하다며 냉대했고, 디올이 디자인한 라인있는 옷이 유행합니다. 그 후 샤넬은 절망하지만… 샤넬을 버린 곳은 오직 프랑스. 미국과 영국은 샤넬을 환영합니다. 그녀의 전성기가 다시 온 것이죠. 역시 노력하는 사람에겐 배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반 세기 전에 유행하던 샤넬 슈트는 가슴과 힙이 작은 여성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주었고, 지금 까지 사랑 받고 있습니다.


(왼)샤넬 퀼팅백 (오)샤넬 가방
출처:(왼)flyairfrance (오)dayzf.tistory

아직 소개 안한 샤넬 고유 명사가 있다구요? 1955년. 퀼팅백 중에서도 첫 백. 2.55 왜 2.55냐구요? 샤넬 NO.5처럼 단순한 이유. 1955년 2월에 런칭해서 2.55라고 합니다. 2.55백 탄생 배경은 항상 손에 쥐던 가방이 불편해서 끈을 연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린시절 열쇠 체인을 영감을삼아 만든 것이 이 유명한 퀄팅백입니다. 이런 사소한 곳에서도 영감을 받은 한 사람이 또 있죠? 바로 마크제이콥스의 ‘그레피티’백입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그레피티'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그 후 87세의 나이에도 컬렉션을 준비하다 1971년 사망하고 맙니다. 그녀의 조국 프랑스에는 배신자로 낚인찍혀 묻히지 못하고 스위스 로잔에 묻힙니다. 장례식엔 발렌시아가, 이브 생 로랑 등 패션 거장들이 몰려와 그녀의 죽음을 애도 했습니다. 비록 조국엔 묻히지 못하지만 패션계에서는 한 획을 그은 그녀 샤넬. 샤넬의 수많은 남자들의 후원과 그들로 얻은 영감이 아니였다면 지금 명품 샤넬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가져봅니다. 지금은 가방, 의류, 향수 뿐만 아니라 화장품,악세사리,신발 등 다방면에서 샤넬을 이름을 내건 수많은 상품들이 출시 되고 있습니다.


샤넬 무덤
출처:(왼)위키트리



출처:(위)eyewear.tistory (왼)tiktok798.tistory (오)mad.kr

참조: 패션의 탄생. 구글.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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