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하다. 크리스찬 디올
프랑스에서 샤넬을 한물가게한 ‘뉴룩’ 그건 무엇이었을까요? 크리스찬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크리스찬 디올
출처:(왼)구글 이미지 (오른쪽)yunkyung.egloos

1905년. 5남매중 둘째로 프랑스 노르망디에 부유한 자제 였습니다. 풍요로운 생활속에 그는 건축가가 꿈꾸며 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건축가를 반대 하셨고, 결국 1920년 정치학과에 입학 합니다. 유명인은 늘 뭔가 해도 다르다죠? 대학생활은 뒷전. 예술가들 모임과 펍과 갤러리를 드나들었고 결국 부모님도 디올의 의견을 어느정도 받아 드립니다. 그래서 디올의 아버지는 갤러리를 열어줍니다. 다른 명품 디자이너들과 스케일이 다르군요.


(왼)피에르 발맹 (오른쪽)지방시
출처:(왼)lifebasics.me (오른쪽)mezis.co.kr

하지만, 1931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갤러리를 닫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오트 쿠튀르 숍에 드레스나 모자 일러스트를 그려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그의 실력은 금새 알려지고, 1938년 로버트 피제의 부티크에서 보조 디자이너 일을 시작합니다.

명품가들이 다 겪는 2차세계대전.
이 때 샤넬은 독일 나치 장교 덕에 무사히 2차세계대전을 보내지만, 디올은 어땠을까요? (샤넬은 어떻게 2차세계대전을 안정하게 보냈을까요? 밑의 샤넬 로고 클릭!) 그는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장이 나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2년간 전쟁에 참전했고, 여동생도 잃게 됩니다.(그 전에 형도 사망) 1941년 전쟁 후엔 루시앵 를롱의 부티크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는 피에르 발맹, 지방시와 같이 보조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아갑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샤넬'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왼)뉴룩 (오른쪽)디올이 디자인한 다양한 라인
출처:(왼)yunkyung.egloos.23 (오른쪽)fashionjjj.egloos

노력가에게 찾아온 행운. 디올의 친구가 당시 섬유 업계의 왕으로 불리던 마르셀 부삭을 소개 해줍니다. 마르셀 부삭의 원단과 디올의 디자인이 합쳐져 1946년 파리 몽테뉴 30번가에 첫 오트 쿠튀르 하우스 크리스찬 디올을 오픈합니다. 전쟁전엔 샤넬의 인기 였지만 전쟁 후엔 샤넬의 명성은 떨어졌고, 1947년 2월 12일 디올의 첫 컬렉션이 열립니다. 여기서 선 보인 것이 ‘뉴룩’ 원래 이름은 ‘꽃부리-Corolle’는 파격적이었습니다. 이 옷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평소 그녀가 좋아했던 꽃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시엔 코르셋이 필요없는 샤넬 처럼 군복 같은 남성스런 옷, 유니폼이 많았는데 디올의 옷은 꽃잎처럼 펼쳐진 스커트와 다시 잘록해진 허리라인으로 여자의 여성스러움을 한껏 더했던 것입니다. 뉴룩은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그 중에서 영국의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국 왕실에선 사치 조장을 막기 위해 의상 소비량을 제한 했는데, 공주들이 뉴룩에 반해 비밀리에 국왕이 디올을 부르기까지 합니다. 1947년 '뉴 룩'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제1회 파리 컬렉션에서 1급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이후 H라인, A라인, Y라인 등 알파벳 라인과 튤립라인, 애로우 라인, 펜슬 스커트 등 다양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패션계에서 주목 받습니다.



(왼)미스디올 오리지날(오 드 뚜왈렛 오리지널) (오른쪽)재탄생된 미스디올
출처:(왼)구글 이미지 (오른쪽)cswomen.cn (아래)구글 이미지

"저는 모든 여성이 만족 할 수 있는 향을 선사하고, 향수를 뿌릴 때 마다 디올의 드레스를 입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한 향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디올은 말했습니다. 첫 번째로 탄생한 향수 ‘미스디올’ 갈바니움과 쟈스민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그린 시프레 계열향. 여동생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는 향수라고 합니다. 이처럼 크리스찬 디올의 작품은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미스디올 오리지날 (오 드 뚜왈렛 오리지널)로 판매되며, 현재는 미스디올 이름을 딴 4가지 향수가 재탄생했습니다. 그는 오뜨 꾸뚜르 뿐만 아니라 프레타 포르테, 영화 의상 등 다방면에 작업하며 프랑스 패션계를 장악합니다. 당시 그의 라이벌은 옛날에 같이 보조 디자이너를 했던 피에르 발맹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였다고 합니다.
명품에서 자주 나오는 '오뜨 꾸뜨르'와 '프레타 포르테'는 도대체 뭘까요?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오뜨 꾸뜨르'와 '프레타 포르테'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매사에 대담할거 같았던 디올은 미신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는 단골 타로 카드 점쟁이 집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쇼를 하기전에 항상 점을 쳤고, 매 컬렉션마다 고향인 ‘그랑빌’이라는 명칭의 코트를 포함시켰고, 한 모델에겐 백합다발을 들게 했습니다. 그에겐 또 피에르 가르뎅과 이브 생 로랑의 애제자가 있었습니다. 이브생 로랑은 1957년 디올 가을 컬렉션에 많은 의상을 선보였는데 당시 35세. 이 외 이브생 로랑의 정보는 따로 포스팅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컬렉션 후, 디올은 이탈리아에서 휴식취하는데 열흘 후 휴양지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52세. 생을 마감합니다. 디자인 박물관의 인물 소개에 따르면 그의 죽음은 생선뼈가 목에 걸린 후 심장 마비에 의한 것이라고 하고, 《타임》의 사망 기사에서는 카드 게임을 하던 중에 심장 마비로 죽은 것이라고 보도 했습니다.


(왼)1950년 모델과 함께한 디올 (오)1995년 파리 디올 패션쇼
출처:vv-mag

그는 10년간 짧지만 강력한 인상을 패션계에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후 메종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여러 수석 디자이너에 의해 디올은 명품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레이디 디올
출처:(왼)springstory11 (오)kdcblog.tistory (아래)stylem.mt

그중 크리스찬 디올의 레이디 디올백은 1995년. 프랑스 퍼스트 레이디인 마담 시라크가 영국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비에게 선물로 디올에게 가방의뢰를 했고 탄생했습니다. 다이애나의 백이란 뜻으로 ‘슈슈’라는 이름에서 ‘레이디 디올’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이 가방은 18세기 프랑스 황실에서 사용하던 의자패턴을 크리스찬 디올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만든 가방이라고 합니다. 마름모꼴’까나쥬’패턴을 가방의 기본 바탕으로 사용한것입니다. 디올엔 의류, 향수,가방 외에도 Christian Dior의 로고 C와 D를 사용하거나 Christian Dior 전체를 새긴 악세사리등 다양한 상품이 있습니다. 디올은 루이비통처럼 LVMH애 속합니다.



(위)디올 본점 프랑스 몽테뉴 거리 (아래)디올 선글라스외 제품
출처:(위)yunkyung.egloos (왼)madeinitaly-e.com (오)kaidow.tistory

참조: 패션의 탄생. 구글.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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