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1882.

"<슬픔>은 지금까지 내가 그린 그림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클래시나 마리아 후닉 이라는 여인입니다. 고흐는 그녀를 크리스티엔이라고 부르다 줄여서 시엔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엔은 삯바느질과 몸을 팔아 생활하던 창녀였습니다. 1881년 겨울 고흐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에서 구걸하던 시엔과 만나 동거를 시작합니다. 고흐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물론 특히 테오로부터 생활비 지원이 끊길까봐 그녀와의 동거사실을 숨기고 지냈습니다. 시엔과의 동거가 길어지자 테오에게 조심스럽게 편지를 씁니다. “지난 겨울 임신한 거리의 여인을 만났어.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병에 걸려 임신까지 한 그녀는 빵을 위해 거리를 해메고 있었지. 나는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며 한 겨울을 보냈어 그녀에게 모델료를 지불하진 않았어. 대신 그녀의 임대료를 지불했지 그렇게 나는 배고픔과 추위를 떨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구할 수 있었어…” 그녀의 모델로 한 작품 중 하나인 <슬픔> 맨 아래에는 프랑스 역사가 미슐레의 말을 인용하여 "어찌하여 이 땅 위에 한 여인이 홀로 버려진 채 있는가"라는 글을 새겼습니다.

고흐는 화가 중 수 많은 편지를 남긴 사람 중 한 사람 입니다. 그는 문학을 즐겼으며, 편지와 작품 에도 여러 작가의 글을 사용하였습니다. 고흐의 예술적 영감과 감성적인 성향은 독서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왼)<모베를 회상하며> 1888. (오)모베

"시엔과 동거, 고흐에게 시련을 주다."
가족들과 테오의 거센 반대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승 모베는 창녀와 동거하는 고흐를 야단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절교를 선언했습니다. 존경하는 스승 모베의 절교선언은 고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며칠동안 몸져 누워야 했다. 모베가 죽는날 까지 고흐는 모베와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베와 헤어진 지 6년 후 1888.3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꽃나무를 그리다 모베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고흐는 작업 중이던 핑크색 배나무 그림에 Remini-scence of Mauve(모베를 회상하며) 라고 싸인하고는 모베의 부인(외사촌 누나)에게 보냈습니다.


시엔과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결국, 집안의 반대로 헤어집니다. 그럼 시엔전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을까요? 첫사랑인 과부 사촌 케이보스가 있었습니다. 고흐는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케이보스가 거절합니다. 1881년에.. 시엔을 만나던 해 였습니다. 사촌 케이보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해 너무 외로웠던 나머지 그 해 겨울 시엔에게 더 끌렸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시련을 겪어서 인가요? 이 후의 고흐에겐 사랑이 찾아 오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갱을 사랑하는 동성애가 아니였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 이 두 여인으로 상처 받은 나머지 이성적인 사랑은 포기하고 우정을 택했지만 그 우정이 너무 지나쳐 사람들에게 동성애라는 편견을 심어 준게 아닌가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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