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에서

미술상인 폴 뒤랑 뤼엘 이 1881년 7월 7일에 사들였습니다.
배경은 센 강 옆 샤토 마을에서 영업 중이던 레스토랑 포네이즈의 테라스입니다.
이 곳은 르누아르가 전에 다른 작품들과 함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알퐁신 푸르네즈의 초상>을 그린 곳이기도 합니다.
봄의 아름다움과 젊음의 생기발랄함을 축하하고 있는 <테라스에서>는 기법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르누아르의 대역작입니다.
이 거장은 이 그림을 통해 활기가 넘치는 색상과 변화무쌍한 붓터치를 구사하여 실물사이즈와 유사한 인물로 테라스 앞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자매?! 모녀?! 모델?!
실제로 두 자매는 모델로 자매가 아니라고 합니다.
두 소녀의 얼굴은 르누아르가 새로 마스터한 강조기법으로 도자기 표면처럼 반짝이는 얼굴의 윤기는 명암으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르누아르 조사하면서 또 다른 책에선 이 두 소녀가 모녀 사이라는 내용도 담겨져 있었습니다.
수줍어하는 호기심어린 아이의 표정과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아이다운 모습을 포착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보시기에 모녀 사이 같으신가요? 아님 자매인척 하는 모델일까요?
이 작품에 대해 아시는 분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이 무렵 르누아르는 샤르팡티에의 응접실을 통해 상류층에 소개 되었고, 상류층 사람들에게 초상화 등을 그려주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습니다.
그는 알제리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샤투에 들렀고, 여기서 알린 샤리고를 만났습니다.



알퐁신 푸르네즈의 초상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

알퐁신 푸르네즈는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에서 왼쪽 턱을괴고 모자를쓴 여성으로 이 식당 주인집 딸입니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식사와 알퐁신 푸르네즈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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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erryStone



오귀스트 루느아르
출처:위키피디아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는 마네, 모네 등 인상주의 시대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물랭 드라 갈레트는 당시 몽마르트의 야외 무도회장이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출처:경기도립중앙도서관

1876년에 그린 이 작품은 오랜 연구와 습작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르누아르가 30대 중반에 그린 작품으로, 커다란 두 개의 캔버스에 그려졌으며, 오늘날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밝은 색채에 인상주의 기법으로 햇빛을 담아낸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의 지도하에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전쟁) 이 끝난 후 강화조약에 불만을 품은 국민방위군 일부와 파리 시민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파리코뮌(1871년. 보불전쟁 후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 정부)이라는 사건과 관련있다고도 합니다.
파리코뮌 당시에 지도부가 있던 곳이 바로 이 무도회장이었다고 합니다.
파리코뮌 기간동안 첩자로 오인당해 국민방위군에게 총살당할뻔했던 르누아르에게 전쟁과 폐허의 기억은 잊어버려야할 존재였고 유토피아주의에 들떠 있던 과거를 회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무기력했지만 화려했던 파리지앵의 꿈이 이 그림을 선명하게 수 놓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알려져 있고 인상주의 회화의 대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왼)옛날. 물랭 드 라 갈레트 (오)현재. 물랭 드 라 갈레트
출처:KBS 명작스캔들


모희는 르누아르가 그리기 좋아했던 소재 중의 하나로 다양한 구도로 실험 했습니다.
그는 여름 내내 이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 설득을 했습니다.
명작 스캔들 26번째 르누아르편에서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섭외 하기 위해 당시 인기 많은 모자를 경품으로 주는 마케팅 전략을 섰다고 합니다.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부인은 마르그리트 르그랑으로, 마르고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르누아르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였고, 남자는 돈 페르도 베델 데 솔라레스 이 카르데네스로 스페인계 쿠바인이였습니다.
앞에 두 여인은 르누아르 친구였던 에스텔과 동생 장. 마지막으로 오른쪽 남자 세명.
프랭키 래미, 노베르 고네트, 조르쥬 리비에르라는 화가의 초상입니다.
르누아르는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종종 방문했습니다.
그중에는 비평가였던 조르주리비에르도 있었습니다.
그는 르누아르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었고 그의 작품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파리의 삶을 담은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왼)갈레트 (오)몽마르뜨 언덕
출처:네이버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었고, ‘르 블뤼트 팽’이라 불렀던 물레방아와 인접했습니다.
갈레트는 건조하고 얇은 과자로 종종 단 포도주와 함께 먹었습니다.
물레방아에 근처 무도회장에서 갈레트가 판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추측해 보았습니다.
이 장소는 젊은이와 화가에게 인기가 좋았고 춤을 추거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잡담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물랭 드 라 갈레트 앞에 있는 나무 그늘. 포도 덩굴이 장미나무 아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르누아르는 방해받지 않고 야외에서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물랭 드 라 갈레트 근처에 있는 코르토거리 12번지의 집을 화실로 빌렸습니다.
그는 이 아틀리에에서 1년반 가까이 매일 이곳을 드나들면서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만들어 냈습니다.
넓이 175cm, 높이 131cm나 되는 대형 캔버스를 아틀리에에서 몽마르트르의 무도회장가지 매일 가지고 가서 현장의 전경을 직접 묘사했다고 합니다.



▲위 그림을 클릭하시면 '가셰박사의 초상'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이 그림은 경매에서 일본 사이토 료헤이에게 7천 8백달러로 팔리게 됩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화에서 말씀드렸듯 이 그림은 암시장에 나오게 됩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작품은 료헤이 관에 함께 가져가기엔 너무 큰 작품이 었나요?
이 작품을 소개하며 다시 한번 고흐의 가셰박사의 초상화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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